Today's TMRRW
- 하깃 길리 글루스카 (Hagit Gili Glu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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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제작자 '하깃 길리 글루스카(Hagit Gili Gluska)'가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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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바이올린 제작, 그 자체가 인생이에요’
- 변호사, 검사에서 바이올린 제작자가 된
‘하깃 길리 글루스카’
- 에디터 정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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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앞의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넘어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오렌지색 담벼락 앞에서 우아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며 활짝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를 따라 현관에 들어서자 그윽한 나무 향과 볶은 커피 향이 사뭇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낮게 몸을 웅크린 자세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다른 한 마리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검고 하얀 머리로 내 다리를 보드랍게 비벼댔다. ‘쇼시(Shoshi)’와 ‘굴리(Guli)’, 이국적인 이름의 두 고양이는 인터뷰이가 서울의 한 거리에서 구조한 길냥이들이다. 이제 몇 주 후면 그는 지난 4년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그의 남편, 그리고 두 고양이와 함께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매미 울음소리를 반주 삼아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어느새 나는 시간을 잊고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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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 길리 글루스카'는 자신이 구조한 길냥이 '굴리'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고국인 이스라엘로 데리고 갈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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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제작자인 ‘하깃 길리 글루스카 (Hagit Gili Gluska, 이하 하깃)’는 깊고 풍부한 사운드로 인정받고 있는 실력 있는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영국판 ‘스트라드 매거진(Strad Magazine)’과 ‘코리아 타임즈(Korea Times)’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N잡러(여러개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다.
하지만 그의 삶의 발자취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기 전, 이스라엘에서 인정받는 변호사, 그리고 검사로 8년 동안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33세의 나이에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로지 바이올린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그는 이탈리아 크레모나로 떠났다.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 온 직업을, 그것도 변호사, 검사라는 전문직을 그만두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신이 났고 이 변화를 고대했어요!"라며 확신을 가득 담은 대답을 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용감하고, 열정적이며,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 아티스트로 만들었을까? 나는 그가 살아온 환경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보다는 고대하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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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작고 외딴 마을에서 자란 하깃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들판을 누비며 자연을 만끽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의 부모님은 마약과 과도한 당분 섭취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창의력과 꿈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쫓아가는 대신, 긴장을 풀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그 결과 하깃은 개구리와 거북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붉게 물든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몸을 숨기는 것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자연으로 가득 찬 이 환경 속에서 그는 창의적인 사상가로 성장했다. "제가 가진 이 자유 시간 - 때때로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이 시간 - 은 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인생 방향을 스스로 정하게 해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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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가족의 품을 떠나 군대로’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인생은 18세가 되던 해, 모든 이스라엘 여성과 남성들이 그러하듯,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서 성숙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처음으로 작은 마을을 벗어나 밖의 세상과 마주한 하깃은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 제 삶은 꽤 단순했어요. 독서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들과 함께 자연과 동물들에 둘러싸여 들판을 누비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군대에서 저와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지내면서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그는 법을 공부하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법을 실천함으로써 그녀가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었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 자연을 해치는 행동들을 보는 게 많이 괴로웠어요. 특히 고통을 겪고 있는 농장의 동물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거든요. 자연과 동물 보호를 위해 헌법을 만들거나 법을 시행하는 사람, 그래서 세상에 선한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었어요." 이러한 결심과 꿈을 갖고 군대 전역 후 그는 로스쿨에 입학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마친 그는 푸릇푸릇한 신입 변호사에서 노련하고 인정받는 이스라엘 총무실의 변호사, 그리고 검사가 되기까지 8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창문으로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순간이었어요. 제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나 자신은 사라져가고 있었어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분명했던 예전의 자신이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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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제작자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다’
때마침 취미로 배우던 바이올린을 위해 찾아간 악기 공방에서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자신의 바이올린을 수리해주던 ‘에얄 호프매클러(Eyal Hoffmekler, 이하 에얄)’를 통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 것이다. 행복해 보이는 에얄에게 그는 본인이 느끼는 불행함만큼 많은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의 흥분된 질문과는 대조되는 에얄의 차분한 대답이 이어졌다. 바이올린 제작과정을 귀담아듣는 사이 그의 마음속 폭풍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고 어린 시절의 자신, 자연 속 여유로운 사색가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통에서 크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워요.” 본인이 만든 악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바이올린 제작 방법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이것이 제가 바이올린 제작과 사랑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의 눈은 열정과 진지함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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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가 끄덕여졌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식어버린 열정을 타오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열정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아 온 경력을 버리고 직업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현실적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깃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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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두려움에 질문을 던져보세요’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계신다면, 그 두려움을 여러분 옆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세요. 그리고 본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보세요.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나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될거에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두려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져본다면 이에 대해 하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죠. 제가 로스쿨에 다니던 첫해에, 시험 기간 동안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시험지를 기다리며 교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제게 말했어요. "너에게 지금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뭐야? 시험 말아먹는 것이겠지. 근데 그게 뭐 어때서? 그게 최악의 상황은 아니잖아? 시험 망할 수도 있는 거지. 실패해도 괜찮아.” 그 순간 친구의 말은 저에게 큰 울림이 되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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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바이올린 제작, 그 자체가 인생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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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이 자신이 만든 '첼로'를
첼리스트와 함께 테스트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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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새로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니게 된 ‘국제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 학교 (Cremona International Violinmaking School ’는 이탈리아에서 세계적인 악기 제작자를 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입학 당시 그는 나이가 많은 학생 중 하나였지만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기도 했다.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였다. 넘치는 호기심 때문에 자신을 가르치던 장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는데 되돌아오는 대답은 “인내하도록 해.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야. 오늘은 이만 쉬어도 좋아.”였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대답이지만 바이올린 제작자가 된 지금은 그 대답이 현답임을 잘 알고 있다. 인내심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것을 제작과정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깃은 바이올린 제작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묘사하듯 바이올린 제작은 마치 먼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과 같아요. 악기를 제작하는 동안 그 악기가 어떤 악기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빠른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악기 제작이란 시류에 맞서는 것과 같아요. 책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매 순간 계속되는 글쓰기 작업도 결과가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속되잖아요. 알 수 없는 것, 즉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에 투자하는 일이랍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에 투자하는 바이올린 제작을 인생 그 자체로 바라본다는 하깃. "바이올린을 제작할 때는 목표가 작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너무 큰 것들을 보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 한숨만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의 작은 목표를 설정해요. 예를 들어, '오늘은 저 판을 평평하게 만들 거야’라고 정했다면 그 다음날은 '오늘은 이 판을 움푹하게 패어야지'라는 식으로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거죠. 또한, 바이올린 제작 과정 중 실패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실패를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실패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실패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방법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실수를 발견하면 내가 발전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더 기뻐한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왜 이토록 그녀의 공간과 표정이 아름다웠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에 변호사, 검사가 되었고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건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으며, 또한 다양한 동물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어 자신의 세상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결과들이 아주 사소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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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변화도 작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세요’
"때때로 우리는 정말 큰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죠.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해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변화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생각하고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 돼요.”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더 나은 바이올린 제작자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다시 법률 분야로 돌아가 동물의 권리를 위해서도 일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환한 웃음과 함께 내 안에 작은 파도가 일렁거렸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는 무엇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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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후 하깃은 예정대로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입국할 때는 남편과 둘이었지만 출국할 때는 두 고양이와 함께 넷이 되어 돌아갔다. 그녀가 한국에 남기고 간 발자취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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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은 ‘투모로우 레터’ 독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여러분이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시도해보지 못한 것,
잘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그저 지나간 꿈과 미련으로 남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이 죽는 그 순간
‘아, 그때 왜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를 하는 상황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없으리라는 것을,
당신을 위해 이 말은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내일을 위한 “투모로우 레터”
SEE U "TMRR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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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 이혜리 옮김
처음북스 | 2015년 8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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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은 왜 이 책을 소개했을까요?
"저는 늘 자연과 과학, 그리고 동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최근에 읽게 된 책인데, 매우 우울한 책일 것이라는 저의 예상과 달리 흥미롭게 읽었답니다. 물론 읽다 보면 정말 슬픈 부분들이 있어요. 인간이 자연에 끼치고 있는 해로운 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과 동물들의 멸종, 대표적으로 공룡의 멸종에 대한 부분들을 읽을 때는 정말 슬펐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인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이미 존재해왔으며, 인간이 없어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인간은 아주 작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죠.
저는 이 사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서 엄청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란 사실 말이에요.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존중감은 더욱 커지죠.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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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이 감동받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정기연주회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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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년 발트앙상블 정기연주회 𝟕 𝐘𝐞𝐚𝐫𝐬 𝐄𝐱𝐡𝐢𝐛𝐢𝐭𝐢𝐨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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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은 지난 2022년 7월 23일 '발트 앙상블 6명의 첼리스트' 공연을 관람하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 중 한 명의 첼로 소리가 정말 자신의 취향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을거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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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깃의 공연 관람은 클래식 음악 북큐레이션 서점인 '쿨디가(KULDIGA)'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쿨디가는 종이책과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책방이자 문화매개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독립서점과 클래식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북.클.럽(book,classic,love) 프로젝트, 서울숲 첼로 페스티벌, 서울시청 앞 '책 읽는 서울광장' 등에서 도서 전시 및 클래식 음악 관련 행사도 주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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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쿨디가(Bookstore KULDIGA)
주소 :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55길 22 그린빌오피스텔 401호
(남부터미널 6번 출구)
이용방법 : 사전예약제로 이용 가능 (코로나 끝날때까지 최소 하루 전, 동시간대 1팀만 예약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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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디가(KULDIGA)'는 북유럽 '라트비아(Latvia)'의
작은 소도시 이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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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컴퍼니 '플레트(PULETTE)'
'투모로우(TMRRW)' 매거진 & 뉴스레터 & 커뮤니티를
발행 및 운영하는 출판브랜드 '무터프레스(mutterpress)'와
독립서점이자 문화매개공간 '쿨디가(KULDIGA)' 운영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2길 19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3층 25 (홍대입구역 7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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